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친다. 매일매일이 똑같고 반복되는 삶의 테두리 안에 갇혀있다. 동기부여 어떻게 해야 할까? 지치는 내 인생. 만약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으니. 사람들은 말한다. 원래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고. 그런 게 인생이라고.
그런 개풀뜯어먹는 소릴랑 하지 말고
어떻게 그런 게 인생인가. 힘들고 지치는 게 인생인가? 아니면 원래 안 되는 것이 인생인가. 매일매일이 똑같은 삶이 당연하듯 모른 척 지내는 것이 인생인가. 그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릴랑 하지 말라고.
한때 이런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병원엘 가야지 뭔 청춘 타령을 하는가.
청춘이라고 아파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다.
나는 이런 입에 발린 번지르르하고 뭔가 있는듯한 말로 감동을 "강요"하는 이딴 말들을 혐오한다. 솔직히 나이 먹고 좀 살아봤다면 그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장난인지 다 알지 않나?
지치고 힘들다면 이렇게 글을 쓰면 된다.
그런 것이 책에서 떠들어 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그런 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그딴 말보다 백배는 더 도움이 될 터다. 고생은 젊어서도 안 하면 좋지 굳이 사서 할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글을 쓰면서 동기부여를 만든다
글을 쓴다는 것이 뭐 대단한 필체를 가지고 엄청난 필력으로 '와~ 책으로 내도 되겠는걸?' 이런 걸 바라는 건 아니다.
아마도 여기서 글을 쓴다는 것은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혹은 '끄적끄적거린다'라는 말과 더 잘 어울리는 말일지 모르겠다. 내겐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지면에 내려놓는 것.
종이 한 장도 필요 없고 그냥 이렇게 인터넷 블로그 페이지나, 핸드폰의 메모장도 괜찮고, 짧게 혹은 길게 끄적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낸다.
욕을 해도 되고 울어도 되고 짜증을 내도 된다. 한풀이를 해도 된다. 뭐 어떤가.
그러고 나서 가만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그리고 생각했던 그런 말들이,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 그것을 잡아보자. 명확하게 보일 정도로. 계속 계속 바라보면서 되뇌고 되뇌이고 한다.
동기부여란 무얼까?
하고자 하는 욕심, 하고자 하는 노력, 힘, 파워, 추진력, 어떤 것을 다 갖다 놓아도 모두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사람이란 안 변한다. 아니 참 변하기 힘들다.
하지만 또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인간이다. 바로 나.
나는 그런 것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이다. 아무리 변하기 힘들어도 결국은 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 사람이다.
힘들고 괴롭고 짜증이 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심? 욕망? 그런 것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비칠 비칠 살다 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것을. 그냥 흙으로 돌아갈 것을. 유에서 무로 그렇게 돌아갈 것을.
그런 것을 원한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고 그리 살다 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일말의, 아주 티끌만큼, 보이지 않은 찰나의 순간만큼이라도 "미련"이라는 것이 스쳐 지나간다면 말이지.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그래서 내 삶을 다시 재 구축해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은 있단 말이지.
찰나의 미련이 있는가?
무(無)에 있던 존재가 아주 작은 미련을 만난다면 그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마치 세포가 순식간에 분열하는 것처럼.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나, 그리고 당신은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 변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미련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정으로 커지기 때문에.
노력? 하지 않아도 된다. 힘들게 그딴 걸 왜 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무것도 없었던 무(無)에서 한 조각씩 매일매일 나를 다시 만들어 나간다고. 재구축해나간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기 시작하면 된다.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나(我)이다.